2019년 3월 10일 일요일

[독서] SF소설, 도서관전쟁, 이퀄리브리엄, 그리고 화씨 451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들어봤을 책인 「화씨 451」.  다른 많은 SF 소설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헐리우드 영화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항상 미루다가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처음 읽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화씨 451은 섭씨 몇 도일까? 였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아니다 다를까, 화씨 451을 섭씨로 변환해서 알려주는 블로그가 많다.

화씨 451은 섭씨 233 도.

책이 불타는 온도라고 한다.  그런데 책 내용에는 딱히 화씨 451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많은 곳에서 그런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믿을 수 밖에.

그렇다면 이 책, 화씨 451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일본 책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도서관 전쟁"이다.  일본 컨텐츠 답게 원작 소설이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으며 이것을 영화화한 작품도 있는데 나는 영화만 봤다.  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던 거익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C%84%9C%EA%B4%80_%EC%A0%84%EC%9F%81)

그리고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이퀄리브리엄」도 있다.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책을 포함한 예술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적 시대상 보다는 건 카타로 더 유명하긴 하다. (건 카타 보기)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책 내용을 다시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것은 책 속에 묘사된, 책을 불태우는 사회가 특정 정부/국가가 강제로 만들어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 몬태그는 책을 불태우는 직업을 가진 방화수인데, 그가 책을 태우면서 몰래 책을 빼돌려 왔다.  이런 사실을 눈치챈 그의 상사인 밀드레드가 그의 집에 찾아가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그 내용을 살짝 들여다 보면,

"한때는 책이란 것도 이곳저곳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았지. ...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  고전들이 15분짜리 라디오 단막극으로 마구 압축되어 각색되고 다시 2분짜리 짤막한 소개 말로, 결국에는 열 내지 열두 줄 정도로 말라비틀어져 백과 사전 한 귀퉁이로 쫓겨났지. ... 이기적인 출판업자들의 손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망가뜨려 놓는 거지.  방송인들?  재미없는 건 죄다 내평개쳐 버리는 거야. '왜 쓸데없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그러면서. ... 인생을 말초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일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일을 끝내고 나면 그때부터 마냥 놀도 즐기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지."

그리고 밀드레드는 이어간다.

"마침내 전 세계 집들이 전부 불연성이 되자 예전처럼 불을 끄는 소방수란 존재가 필요 없게 되었지.  ... 우리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그 타당하고 정당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 거지."

즉, 이 책 속의 세상에 등장하는 책을 불태우는 사회는 누군가가 독재를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세상이 아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회 자체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가 점차 스스로 말초적으로 되어가고, 자신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나올 것 같다는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책들을 불태우고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색인들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싫어하지, 태워 버려. 백인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싫어하고. 그것도 태워 버려.  누군가가 담배와 폐암과의 관련에 대한 책을 썼다면? 담배 장사꾼들 분통이 터지겠지? 그럼 태워 버려."

이렇듯 인간을 행복한 감정으로 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논란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면 된다는 단순한 사회가 「화씨 451」이 묘사하고 있는 사회다.  이 사회는 단순히 인간을 통제해서 거대한 독재 국가를 만들겠다는, "빅 브라더"가 존재하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묘사하는 사회와는 살짝 궤를 달리한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 내가 믿는 사상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사상이나 생각과 다르다면 단순히 그 생각을 없애면 문제는 없어진다는 사회가 「화씨 451」의 사회다.  그 상징으로 책들이 불태워진다.


이쯤되면 저자인 레이 브래드버리는 최근 우리 사회의 혼란기를 미리 내다보고, 그 끝을 예상한게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어 냉전시대를 거치고, 테러로 촉발된 이슬람, 기독교, 중화사상의 대립 한 가운데 또 남, 녀 젠더를 가르는 논란 속에 만약 사회가 손쉬운 해결 책인, 그러한 논란을 모두 없애버리고자 한다면 닥치게 될 사회가 이 책의 사회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이러한 수많은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문명과, 갖가지 인류를 구분짓는 다양성을 어떤 방식으로 타협하고 조율하고 조정해 나아갈 것인가가 숙제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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