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일 월요일

일은 많은데 일 하기 싫을 때 일을 해내는 방법 - 내 경험을 바탕으로

왜 일은 항상 한꺼번에 물밀듯 밀려오는걸까?  그런데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이 물밀듯 밀려온다기 보다는, 내가 자초한 일인 경우가 더 많다.  해야 할 일을 자주 미루다 보니 모든 일이 한꺼번에 마감일이 겹치면서 참사가 일어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일을 미루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일은 미루어야 더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는 연구도 있다.

“일을 미루는 행동을 통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고 예상치 못한 도약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워튼 스쿨의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사실 이 말은 미루는게 습관이 된 나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기위해 기억하고 다니는 말이다.  하지만 미루었던 미루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몰려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 없이 일이 많을 때는 정신줄을 놓아버릴만큼 내 몸 가누기도 쉽지 않다.  머리 속은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고 어떤 일이 중요한지, 어떤 일이 시급한지 구분도 되지 않고 모든 일들이 동일한 무게감으로 나를 짓누른다.  게다가 시간은 어찌나 야속하게 빨리 흐르는지...  안그래도 일 하기 싫은데 더욱 더 절실하게 일이 하기 싫어진다.

나도 팀을 꾸려가면서 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업무와 갑자기 튀어나오는 상사들의 요청,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프로젝트 이슈로 팀원이 급하게 도움을 요청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고객이 급하게 보고서를 요청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거기에 원래 미루던 업무 마감이 당장 이번주라면?  여러분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없는가?  어디 계단에서 굴러서 병원에라도 실려가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희한하게도 나는 위와 같은 경험을 매년 약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경험하는 것 같다.  거의 분기 별로 한 번 정도는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가 나를 덮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아직 이렇게 잘 버티고 살아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했을 때는 여러 업무가 동시에 마감이 겹치는 경우 모든 업무를 전부 다 납기내 수행하지 못해 고객, 상사, 동료들에게 욕먹은 적도 많았다.  그 욕을 자양분삼아 경험한 나만의 일하는 방법을 정리해본다.


우선 15분만 시간을 내어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이 15분이 무척 중요하다.  이때는 다른 어떤 방해도 받으면 안되고 오직 한가지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이 15분이 내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일들을 제 때 완수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15분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목록을 모두 적는다.  적을 때 해야 할 일 옆에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마감일도 함께 적는다.  그리고 마감일 중 정말 최종의 최종까지 미루고 미뤄도 되는 날짜도 같이 적는다.  엑셀을 사용해도 되지만 나는 손으로 직접 쓰던지, 메모장을 열고 메모장에 적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작성한다.

오늘이 5월 2일 저녁이라고 가정한다.
  • OO 관련 사업부장님 보고자료 작성 / 5월 4일
  • 전사 세미나 발표자료 작성 / 5월 6일
  • OO 프로젝트 이슈관련하여 협조 메일 보내기 / 5월 6일
  • 전략과제 회의를 위한 논의 기초자료 만들기 / 5월 4일 (5일, 6일이 회의니까...)
  • XX 프로젝트 최종 결과보고서 리뷰 후 의견 주기 / 5월 6일
자, 이제 절반을 왔다.  중간에 전략과제 회의를 위한 논의 기초자료는 4일까지 작성해서 공유하기로 했지만 5일이 휴일이고 6일 오후가 회의이기 때문에 5일 저녁이나 6일 오전에 보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의지치가 아닌 실제 이 날을 넘기면 큰일나는 날짜로 작성하는 것이 식은땀도 나고 좋다.


일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갠다.

얼핏 보면 마감일이 임박한 것 순서대로 정렬해서 급한 것 부터 먼저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접근해보면 오히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당장 급해보이는 사업부장님 보고자료를 첫 페이지를 열어놓고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않아 또다시 일하기 싫은 모드로 돌변하여 갑자기 집안 청소를 하거나, 책상 정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는 위 일들을 1시간 내 끝낼 수 있는 작업 단위로 쪼갠다.
원래 일을 할 때는 일을 완수하면서 끝내는 성취감을 자주 가지는게 중요하다.  이런 성취감은 큰 일을 했을 때나, 작은 일을 했을 때나 체감하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에 작은 성취감을 자주자주 느끼는 것이 일을 지속하는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이런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시간 단위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일의 단위도 시간 단위로 쪼개주는 것이 좋다.
쪼개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보통 보고서는 목차 단위로, Task는 일의 절차 단위로 나눠주면 쉽게 할 수 있다.  만약 목차 잡는 것 부터가 큰 일이라면 그 큰일에 너무 시간을 들이지 말고 일단 목차를 잡겠다는 일 조차도 일로 표현하면 된다.

  • OO 관련 사업부장님 보고자료 작성 / 5월 4일
    • 개요
    • 이슈사항
    • 해결방안
    • 향후 계획
  • 전사 세미나 발표자료 작성 / 5월 6일
    • 스토리라인 잡기
    • 목차 완성
    • 본문 작성
  • OO 프로젝트 이슈관련하여 협조 메일 보내기 / 5월 6일
  • 전략과제 회의를 위한 논의 기초자료 만들기 / 5월 4일 (5일, 6일이 회의니까...)
    • 회의 Agenda 정리
    • Agenda 별 논의 Point 잡기
    • 메일 공유
  • XX 프로젝트 최종 결과보고서 리뷰 후 의견 주기 / 5월 6일
    • 결과보고서 읽기
    • 수정사항 표시하기
    • 회신하기

가장 급한 것이 아닌, 가장 쉬운 것 부터 먼저 시작해본다.

지금 나의 상태는 일이 너무 하기 싫지만 일은 무지막지하게 쌓여 있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따라서 이런 상태로는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서 잘 처리할 자신이 없다.  이럴 때는 가장 쉬워보이는 일을 우선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위 예에서는 상대적으로 마감일에 여유가 있는 OO 프로젝트 이슈관련하여 협조 메일 보내기가 가장 만만한 것 같다.  팀원이 부탁했는데 나도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미뤄뒀던 것 같다.  뭐, 지금은 급한 상황이니까 부탁도 재빠르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정중하게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고 저 업무에 두 줄을 쭉쭉 그어서 지워버린다.  만약 메모장이나 엑셀에 썼으면 지우기 보다는 잘라내기 해서 목록의 가장 아래에 [완료] 표시를 해 놓는 것을 추천한다.  아예 지워버리면 또 다시 목록에는 해야 할 일들만 남아있기 때문에 나의 성취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다.  만약 나처럼 종이에 썼다면 펜으로 죽죽 그어버리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본다.
나는 바로 이어서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드는 일이 아닌, 남이 만들어 놓은 문서를 읽어보고 의견만 줘도 되는 업무가 쉬워보여서 결과보고서 리뷰도 먼저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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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많은 일을 처리한 것 같지 않은가?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일이 손에 붙고 탄력이 생기면 중요한 것을 먼저 한다.

어느정도 성취감을 느끼면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으면 남아있는 업무중에 정말 중요한 것, 의미 있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내가 상사에게 보고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느낀다면 위 과제 중에서는 사업부장님 보고자료를 먼저 작업을 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 보다는 스스로의 역량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는 것에 조금 더 의미부여가 되어 있다면 전사 세미나 발표자료를 먼저 시작할 수도 있다.  다만 이때는 마감일을 고려해서 발표자료 전체를 바로 작성하는 것 보다는 스토리라인과 목차까지만 먼저 작업하는 것이 좋겠다.

내 경험에 기반한 글이지만 계속해서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일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청소는 어제 했고, 내 책상도 이미 너무 깨끗해서 글을 쓰는 방도 뿐이 없었다.

기억하자.  일을 큰 덩어리로 접근하면 중간에 성취감도 느끼기 어렵고, 하나의 작업에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금방 지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일을 작게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쉬운 것 부터 일단 먼저 시작해본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미루지 말자.

2022년 4월 20일 수요일

급여 인상 면담과 사측 vs 직원

팀장의 업무중에 하나가 팀원 케어다.  

(요즘은 별거 아닌 단어도 영어로 쓰이다 보니 "케어(Care)"가 돌봄, 보살핌이라는 뜻인데 직역하자면 팀원 돌봄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느낌이 팀원을 어린이 취급하는 것 같아 굳이 케어라는 단어로 사용하는 것 같다.)

우리회사는 매년 4월에 연봉 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 읽는다)과 그에 따른 급여인상이 이루어진다.  대체로 역량에 따라 차등으로 급여 인상 폭이 정해지고 팀원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리고 현재 급여의 수준에 따라 인상 비율이 정해진다.  인사 조직에서 이렇게 비율이 정해지면, 팀장들을 대상으로 공유를 해주고, 팀장들은 공유받은 기준을 바탕으로 팀원들에게 전달을 해야한다.

"회사는 당신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노력으로 회사는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성장한 만큼 보상을 위해 귀하의 역량에 따라 00% 만큼의 급여 인상을 해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충 이정도의 의미로 팀원들과 의사소통을 해달라는 안내가 내려오고, 팀장들은 충실히 그 안내에 따라 팀원들 개개인과 면담을 진행한다.  위 글에서 느꼈다시피 팀장은 회사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하고, 혹시라도 팀원의 불만에 대해서는 회사의 정책과 노력 그리고 한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어 팀원을 납득시키는 역할도 수행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면담을 진행하다보면 중간에 나 스스로 퍼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직원인가 회사인가?'  물론 팀장은 회사와 팀원 중간에서 회사의 방향에 맞게 팀원들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런 느낌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팀장이기 이전에 팀원이었기 때문에 회사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지금의 느낌이 아직 익숙치 않다.  이런 회사측 대리인이 된 느낌은 팀장을 오래하게 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일까?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회사도 아니고 팀원도 아닌 그 어중간한 입장이 나는 더 좋다.  그래야 나도 팀원들과 함께 부대끼며 함께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팀원들의 나이대에 따라 급여인상 안내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이다.

 - 40대 이상 고참 :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고생 많으시네요~ 회식은 언제?"
 - 30대 중후반 : "감사합니다. 혹시 공지된 평균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OO 때문인가요?"
 - 30대 이하 사원/선임 : "넵!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참들은 그러려니, 내가 직접 연락을 해서 알려준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중간 층은 본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급여 수준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민감해했고 회사의 기준을 세세한 것 까지 질문을 쏟아내서 곤혹스러웠다.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는 사원/선임 들은 무조건 열심히 하겠단다.


아직 이야기 하기 곤란한 팀원들도 있었는데, 성과가 낮아 급여인상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이다.  회사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정해져 내려온 것이긴 하지만 이런 곤란한 말을 직접 전해야 하는 상황은 당장에라도 팀장 자리를 때려치고 싶게 만든다.  이럴 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평상시에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런 스트레스는 팀장이 되고 난 뒤에야 새롭게 발견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라는 표현 자체를 잘 이해 못했었는데 팀장이 되고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년에 두 번씩 받는다.  일년에 두 번, 상반기/하반기 평가 시 상대평가로 인해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 팀원들을 면담할 때 받는다.  이 스트레스는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냥 팀장의 원죄라고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2022년 4월 17일 일요일

커리어 강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듯, 나의 커리어 산맥

얼마전 회사의 교육팀에서 강사 참여 섭외가 왔다.  고참급 책임들 중 팀장의 추천을 받은 인원들을 대상으로 향후 커리어를 고민해보는 과정이라고 했다.  일명 "커리어 디자인 과정".  내가 회사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나의 커리어를 교육 참가자들과 공유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마련한 모양이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는 나는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이런 교육 기회가 아니면 내가 회사에서 나보다 상대적으로 더 젊은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성장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나 스스로 성장한다는 느낌은 이번 교육에서도 또 다시 체감을 했다.

교육 참가자들이 여러 강사들 중에서 본인과 커리어가 가장 유사하거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강사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우선 나 자신의 소개 자료를 제공해야 했다.  이렇게 내 소개 자료를 만들다 보니 과연 나라는 사람은 어떤 전문가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의 차별화 요소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가 교육 참가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면서 자료를 작성하니 내가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우리 회사의 촉망받는 인재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우리 직장인은 마감이 있는 작업은 빠르게 해치워야 해서 나 스스로를 브랜딩하고 Selling 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드렸다.

그 자료 중에 아래와 같은 "커리어 산맥"도 있다.  커리어 산맥은 내가 지금껏 업무를 하면서 크게 성장감을 느꼈던 주요 지점과 그 이유를 아래 그림과 같이 작성하는 것이다.  성장감을 높여가면서 우상향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산맥과도 같아서 커리어 산맥으로 지칭하는 것 같다.


[나의 커리어 산맥]



이런 작업은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 왔었구나.  그래, 이런 프로젝트들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가장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시켜 주었구나.  일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다.  좋은 사람들, 나쁜 사람들 모두 나를 어떤 형태로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변화시켰다.  지금이 나는 과거 시간의 축적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산맥은 나의 커리어가 종료되는 시점, 내리막길은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교육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했던 참가자 중에 많은 분들이 나의 미래를 물었다.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니까 은퇴나 퇴직 후에도 그 전문성을 살려서 커리어 계획이 이미 다 짜여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참석했는데, 그들이 나의 미래를 묻고 있었다.  

물론 안개 같이 뿌연 계획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현재 시점에서는 계획보다는 "꿈"에 가깝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세부 작업들이 무엇인지조차 뚜렷하지 않다.  나 스스로 당황하는게 느껴졌다.  답을 하기 어려워 대충 내가 생각하고 있는 "꿈"에 대해서만 얼버부렸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별거 아닌 나에게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고, 기회를 찾고,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 스스로가 성장함을 느꼈으니 전체로 보면 이익인 교육 과정이 아니였을까?  (아니, 이런...  무책임한 강사 같으니라고...)

남들에게 가르치고 이야기를 해주면 본인도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기회가 생기면 힘들고 귀찮다고 피하지 말고 적극 도전해보자.


2022년 4월 16일 토요일

[독서]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 김봄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함께 든든하게 살아온 가족이면 그 관계가 우선하지 않을까?

작가가 덤덤하게 써내려간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모음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념이나 사상이나 그런 것들보다 사랑, 우정, 박애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짧고,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오랜만에 읽은 참 좋은 수필이다.


그나저나, 나만 고양이 없어!


[독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뇌 과학을 기반으로 우리가 배우고 학습하는 것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주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듣는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을 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책 자체는 약 400페이지 정도로 조금 두꺼운 편인데 예상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읽혔다.  저자가 아주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뇌과학과 관련된 뇌 구조 등은 언급을 하지만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용어를 외워야 할 것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작 원리나 방식을 이해시킴으로서 우리가 왜 이런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상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별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딱 1가지 씩이다. (생각해보니 잘 썼네...)

  • 한 가지에 집중하라 (멀티태스킹은 불가능하다)
  • 두 가지를 결합하라 (매거크 효과)
  •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예측을 깨라 (작동, 절차, 서술 기억)
  • 우리는 어떻게 배우는가 (맥락 의존적 vs. 상태 의존적)
  • 일 잘하는 뇌를 찾아라 (집중력)
  • 청크를 만들고 인터리빙하라 (학습 후 인터리빙 - 기본은 충실)

뭐 이렇게만 써 놓으면 처음 보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를테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충 기억은 날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나도 학습은 한 학습 한다고 자부 하는데 내가 스스로 터득했던 여러가지 공부 방식들이 이 책에서도 적극 추천하고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막연하게 나에게만 효과가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 방법들이 뇌가 가진 특성으로 인해 당연히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독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소설 연달아 읽기가 가끔은 삭막했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 책은 딱 그 용도의 책으로 적합했다.  꿈속 세상이 있고, 그 꿈속 세상에서 꿈을 파는 이야기.  분위기도, 등장 인물들도 환상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해리포터 첫 번째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꿈틀대며 올라왔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마음이라고 할까?  책장을 넘기며 책이 끝나가는게 실시간으로 아쉬워지는 그런 느낌.  끝나지 않고 이야기가 영원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

꿈 속 세상의 설명과 묘사는 내가 몇 번을 책 저자가 누구인지를 들춰봐야 했을 만큼 국내 작가의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오묘하게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렇고, 묘사되는 상황이나 배경도 그렇고 외국 소설 번역인가?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꿈속 이야기에서 그 꿈을 꾸는 현실의 사람들로 초점이 바뀌면 아, 우리나라 소설이구나라는 느낌이 확 살아난다.  꿈과 현실을 이렇게 문체를 가지고도 구분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꿈을 파는 꿈 백화점.  그리고 꿈을 만드는 장인들.  이들의 흥미롭고 가슴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냥 항상 꿈 같지는 않다.  현실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무의식인 꿈을 통해 위안을 받고 성장을 하는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오히려 이런 현실과의 대비에서 꿈 백화점이 그 의미를 찾는다.

짦게라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는 이야기.  팬 픽션도 많이 나올 법 한데 찾기가 어렵네...

[독서]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직전 글에서도 썼지만 우리나라 SF 소설의 수준이 내가 모르는 사이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 같다.  이번 책 「천 개의 파랑」도 마찬가지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서 느끼는 여운이 상당히 오래 갔다.  2주 전에 읽고 지금에서야 글을 쓰는 것임에도 당시의 여운과 감정이 고스란이 살아나고 있다.

브로콜리, 줄여서 콜리.  이 로봇은 어쩌다가 인공지능을 갖게 되었다.  우리 모두도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처럼.  그리고 콜리는 경주마와 함께 지내면서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다.  그 와중에 경마장을 중심으로 주인공과 그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외롭다.  아니, 외로운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냥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아이.  엄마와 언니도 각자 그들의 물리적, 내적 공간에 따로 삶을 각자 살아내고 있다.  이렇게 파편화된 가족에 콜리가 어느덧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왜?  사는건 뭔가요?  왜?

콜리, 경주마를 중심으로 파편화된 한 가족이 다시 서로를 발견하고 한 가족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이게 왜 SF 작품이지 싶지만 콜리는 로봇이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무엇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 작품은 완전한 SF가 된다.

「앨저넌에게 꽃을」 작품이 생각난다.  SF는 최소한의 장치로 존재하고 나머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