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책장을 스캔 하며, 이번에는 무슨 책을 읽어볼까? 하는 중에 떡하니 『유한계급론』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이런 책을 산적이 있었나 싶었는데 아내가 사놓은 것 같았다.
이 책은 사실 베블런의 원서의 번역본은 아니다. 저자는 원용찬씨이며, 해당 책을 조금 알기 쉽게 편역했다고 해야 하나? 편역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 간단한 배경 지식도 전달해주는 형태의 책이다. 목차를 보면 이해가 쉬운데, 살펴보면.
1부. 베블런과 당신들의 아메리카
2부. 『유한계급론』을 말한다
3부. 본문
4부. 관련서 및 연보
즉, 1부는 저자가 『유한계급론』의 저자인 베블런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책이 씌여진 시대적 배경과 환경 등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리고 2부는 『유한계급론』이라는 책 자체가 의미하고 있는 것을 쉬운 설명으로 해석을 해준다. 실제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예고편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사용되는 용어들이나 단어들이 바로 얼마전 읽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 나온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나오는 덕분에 개념적인 이해가 된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너무 쉽게 잘 씌여진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저자가 잘 써서 그럴테지만.
3부는 드디어 본문으로 들어가는데, 이게 완역판은 아닌 것 같고 해당 책의 내용을 요약한 편집 버전으로 보인다. 본문을 읽다 보면, 괄호 안에 실제 책의 면수를 표시해주는데 아마도 전체를 번역하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읽으면서 제목의 궁금증을 답변하는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체의 에너지를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생존투쟁에 모조리 쏟아 부어야 하는 절대 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하려는 노력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명제로부터, 유한계급의 제도가 하류계급으로부터 가능한 만큼의 생존수단을 박탈하고 소비 구매력과 가용 에너지를 축소시킴으로써 그들이 새로운 사고습관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노력마저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논리가 도출될 수 있다. (p.207)
뭐 이 내용이야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내용이니까 굳이 따로 내 의견을 적지는 않겠지만, 읽는 내내 부끄러웠던 것은 고백을 해야겠다. 뭐랄까, 유한계급이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신의 남는 시간을 여가라는 형태로 소비해야만 하는 계층.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이 있어야 할텐데 가진 자본이라고는 나 뿐인 불쌍한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장에 자본(여기서의 자본은 생산 수단을 의미한다)이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대번에 떠오르는 것은 부동산이었다. 실제 나 같은 직장인이 유한계급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이 임대업을 통해 다달이 월세로 생활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튼, 부끄러운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베블런은 또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로 고전을 읽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학자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관례적으로 인정되는 증거로서 어떤 학식을 내세워야 하는데, 고전은 그런 목적을 위해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전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다는 증거로서, 이런 낭비를 위해 필수적인 금전적 여유를 갖췄다는 증거로서 유용하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p.249)
여기에 더해 베블런은 철자법을 정확히 지킨다는 것 까지도 과시적 낭비법칙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를 습득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p.250)
하아, 내가 고전을 읽고자 하고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욕구가 결국은 유한계급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나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지 않은가?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러한 유한계급이 만드는 "시간과 소비를 낭비하는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예법과 예절이 되어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요건이 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Manners Maketh Man
출처 : http://blog.yes24.com/document/8434240
(책 리뷰는 별도 블로그에 함께 게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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