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후배들에게 커리어 관련하여 무엇이든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대부분의 후배들은 부담스러웠는지 전혀 반응이 없었지만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 몇몇은 장문의 메일로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 질문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 할 수 있었다.
① 일 잘하는 방법 (일을 통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
② 성장하는 방법
③ 사회생활을 잘 하는 방법
답을 하려고 고민을 해보니 사실 정답이 있는 질문들이 아니여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쥐어 짜낼 수 있는 조언 정도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것도 소위 "꼰대"로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히 답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보니 문득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왜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 과연 나는 왜 일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있어야, 그 일을 잘하고, 그 일을 통해 성장하고,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해쳐나갈 수 있을테다. 그런 목적 없이는 이 모든 작업들은 하나하나 모두 스트레스 요인이 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다시 스스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과연 왜 일을 하는가?
물론 사람마다 일하는 이유는 다를텐데,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내가"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우선 당연하게도 먹고살기 위해서가 가장 큰 목적이 될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일 때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받았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혼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엄청난 성취감이 있었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 선물을 사드리고 뿌듯해 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 역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받은 월급을 쪼개 적금을 들고, 통장에 돈이 적게나마 쌓여가는 것을 보는 기쁨은 대단했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직장을 얻은 이유이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월급은 몇 달만 받다 보면 당연시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을 더 잘하고 더 인정을 받고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서 정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과연 나는 왜 그랬을까?
일단은 재미있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첫 직장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은 개발자였기 때문에 주 업무가 프로그래밍이었다. 컴파일이 안되거나, 로직상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몇날 몇일을 밤을 새워가며 해결했을 때의 그 희열이란! 당시에는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보람을 느꼈고,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선배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재미는 그 일이 내 성향과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랬을터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경력이 쌓여가면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그들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줄 때 또 다른 형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내 목표가 회사에서 "보안" 하면 무조건 내 이름이 생각나도록 하자였다. 그래서 전사 게시판에 보안과 관련된 질문이 올라오면, 설사 내가 잘 모르는 분야더라도 따로 공부를 해서 답변을 달아주고는 했다. 그러다보니 계속 공부를 하게 되는 선순환도 생겼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마도 나는 "존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일을 해온게 아닌가 싶다. 이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인간의 욕구가 그 중요도별로 일련의 단계를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즉,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소속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의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앞 단계가 충족이 되면 그 다음 단계로 욕구가 전이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나는 취직을 통해 기본적인 급여를 받으면서 생리적, 안전의 욕구는 충족이 되었고, 문제해결과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애정·소속 욕구와 함께 아주 기초적인 존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더 발전하지 못하고, 이 존중의 욕구를 계속 충족시키기 위해 마치 애정결핍에 걸린 사람처럼 끊임없이 일에 매진을 해온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아직 나는 나의 자아실현의 욕구 자체를 강하게 느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이론이 모든 사람들에게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일단 나에게 있어 자아실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지금 드는 생각은, IT인력의 끊임없는 연봉상승을 위한 작금의 이직 현상은 나와 비슷하게 인정을 받기 위한, 존중을 받기 위한 움직임인 것 같다. 자본주의, 아니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당연히 나의 가치는 나의 연봉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봉은 회사와 사회가 나를 더 많이 존중해주는 것이므로.
결론.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애정결핍에 걸린 사람처럼 계속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이 글을 적으면서 깨달았다. 그렇다고 전혀 후회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 스스로 나를 존중할 수 있으니까. (아니 잠깐, 혹시 이게 자아실현인건가? 이건 더 심사숙고 해봐야겠다.)
오늘 깨달은 이 사실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쓸 편지를 고민해봐야겠다.